제공;박주열님

雲甫 金基昶 화백 생애와 그림

검은색 클럽(카드) 생애 검은색 클럽(카드)

김기창은 1913년 서울 운니동에서

당시 총독부 토지관리국 직원이던

아버지 김승환과 어머니 한윤명 사이에서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1]

 

여덟 살때 장티푸스로 인한 고열로

청각을 상실한 후 언어 장애의 증세가 있었다.

하지만 아들의 재능을 알아본 어머니의 소개로

이당(以堂) 김은호 화백에게 동양화를 배워

1931년 조선미술대전에 출품하여 1940년까지 6회 입선,!

특선 3회를 기록했다.

 

24살 때인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서 최고상을 받은 운보는

연4회 특선 경력으로 27살에 선전 추천작가가 되었는데,

이후로 광복 전까지 주로 일제의 내선일체사상을

정당화하는 친일 활동이 이어졌다.

 

1943년,30세아내 우향 박래현과 처음 만나서

3년간의 필담연애 끝에 1946년 결혼하였다.[2]

 

검은색 클럽(카드) 그림 검은색 클럽(카드)

김기창 화백이 그린 예수님의 일생

(한국적으로 표현)

* 수 태 *


* 예수의 탄생 *


* 요한에게 세례를 받음 *


* 제자들을 만남 *


* 오천명을 먹임 *


* 물 위를 걷다 *


*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


* 예수의 발을 씻음 *


* 최후의 만찬 *


*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


* 재판을 받다 *


* 십자가를 지시고 *


* 십자가에 못 박히심 *


* 시체를 옮기는 제자들 *


* 부 활 *


* 승 천 *

 

1957년 미국 뉴욕 월드하우스 화랑 주최

기독교 한국 현대작가전에 초대 출품했다.

1960년 국전 초대작가가 되어 국전 심사위원을 역임하고,

타이베이(台北)와 홍콩에서 열린 한국미술전에 출품했고 이어

도쿄(東京)·마닐라에서 열린 한국미술전에도 출품했다.

1962년 수도여자사범대학(훗날 세종대학교)으로 교직을 옮겼고

문화자유전에 출품했다. 1963년에 5월문예상 미술본상을 수상했고,

제7회 상파울로 비엔날레에도 한국 대표로 출품했다.

1964년 미국무성의 초청으로 도미(渡美), 1969년에 재차 도미하여

뉴욕에서 개인전을 가졌다.[3]

홍익대학교세종대학교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1979년 한국농아복지회를 창설하여 초대회장에 취임하였고,[4]

1984년에는 서울 역삼동에 청각장애인을 위한

복지센터인 청음회관을 설립하였다.[5]


 
밤새(부엉이)/ 1972, 종이에 수묵채색, 99 x 182 cm


전복도(戰服圖)/ 1934, 비단에 채색, 71.5 x 57.5 cm


아악의 리듬/ 1967, 비단에 수묵채색, 86 x 98 cm



춘정(春庭)/ 1976, 비단에 채색, 64 x 62 cm



닭/ 1977, 비단에 채색, 61 x 69 cm


귀로/ 1993, 비단에 수묵채색, 130 x 160.5 cm




부엉이/ 1976, 비단에 수묵채색, 120 x 83 cm


초저녁/ 1974, 종이에 수묵담채, 128 x 131 cm


청산도/ 1967, 비단에 수묵채색, 85 x 100.5 cm


백운도(白雲圖)/ 1978, 비단에 수묵담채, 82 x 105 cm

 


수묵 청산도/ 1976, 비단에 수묵담채, 53 x 61 cm


탈춤/ 1961, 종이에 수묵채색, 48.5 x 35 cm


바라춤/ 1961, 종이에 수묵채색, 47.6 x 40.8 cm


청자(靑磁)의 이미지/ 1960~1964, 종이에 채색,

165.5 x 111.5 cm


연(蓮)II, 유자, 학과 매병, 연꽃과 고양이/ 1958~1959,

종이에 수묵담채, 66 x 70 cm (4폭)


군해(群蟹- 게떼)/ 1966, 종이에 수묵담채, 174 x 462 cm


보리타작/ 1956, 종이에 수묵채색, 84 x 267 cm


정청(靜廳) / 1934 종이에 채색 193 x 130 cm


동자(童子) / 1932 비단에 채색 56 x 32.5 cm


흥락도(興樂圖) / 1957 종이에 수묵채색 221 x 168 cm



복덕방 / 1953~1955 종이에 수묵담채 75 x 96 cm


가을(엽귀-?) / 1935 비단에 채색 170.5 x 109 cm


군상(群像) / 1959 종이에 수묵담채 136 x 69 cm (4폭)


군작(群雀-참새 떼) / 1959 종이에 수묵채색 142 x 319 cm


호박꽃 / 1959 종이에 수묵담채 57.5 x 35 cm



금붕어 / 1960년대 비단에 수묵채색 57.5 x 52 cm


고양이와 나비 / 1964 종이에 수묵채색 98.5 x 50.3 cm


청산도 / 1970 비단에 수묵채색 82 x 101 cm


청록산수 / 1976 비단에 수묵채색 84 x 101 cm


청산농경(靑山農景) / 1970년대 비단에 수묵채 69 x 138 cm

 

군마도/ 1986, 비단에 수묵채색, 177 x 278 cm

 

 

청산도 (운보 김기창)

운보(雲甫) 김기창 (金基昶: 1914~2001)은 별도의 설명이 필요없는 이 시대 최고의 한국화가이다. 우리는 운보의 작품을 매일 만나고 있다. 1만원권 지폐에 그려진 세종대왕화상이 그의 작품이란 사실을 잘 모를뿐이다.

 1993년 예술의 전당 전시회 때 하루에 1만 명이 입장한 진기록을 세웠던 그는 7세 때 장티푸스로 청각을 완전히 잃은 귀머거리로 친일파 어용화사(御用畵師)로 비난받고 있는 이당(靑田) 김은호(金殷鎬)의 문하에서 사사 했으며, 1956년 국전 초대작가·심사위원·수도여자사범대학과 홍익대학교 교수를 역임했고,

백양회(白陽會)의 중심인물로 활약하는 동시에 수많은 해외전을 가졌다.

대표작으로

《가을》(1934) 《보리타작》(1956) 《새와 여인》(1963) 《소와 여인》(1965) 《태양을 먹은 새》(1968) 《나비의 꿈》(1968) 《군마도》(1970) 《웅(雄)》(1970) 《달밤》(1978) 등이 있다.

5·16민족상(1986)·서울시문화상(1986)·색동회상(1987)을 받았다

 





















 

 

 

 

Posted by 박 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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