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원효전화국 케이불 침수 와 [稱秀會]
: "이창한" <chlp28@hanmail.net>, "박주열" <y1926711@hanmail.net>, "문태원" <twmoon5@hanmail.net>,
1983년 원효전화국 케이불 침수
1983년 여름 비가 왔다 한강이 범람하여
용산전화국 원효전화국이 침수되였다
용산전화국은 지대가 낮아 침수에 대한대비가 되여 있는데
원효전화국은 약간지대가 높아 지금까지 침수된예가 없었는데 침수가 됬다
이 두곳 모다 남서울전신전화건설국 에서 복구하기로 되였는데
용산전화국은 30여조의 케이불침수를 시내잔화국 분담제로 대책해
놓았는데
원호전화국에서는 예년의 당초 침수량보다 도렌치에서 침수되는 수위가 올라간다
전람전공이 많이 소요된다 청에 전람요원의 지원을 요청하니
전람요원은 모다 동원되고 여유 인력이 없단다
우리 남서울건설국에서 12주 교육식힌 36명 어데있나 물어봤다
대답이 체신부 광장동의 우편물 집배소에서 사역 한단다
모다여기 보네 달라했다
우선 왔다
그리고 또 왔다 교육당시 새로사준 도치램프 갖이고들 왔다
물먹은 케이불이 16조이다 36명을 집합식혔다
그리고 남서울전신전화건설국 교관 오라해서 바람새는곳 찾아서 매달고
케이불 까고 말렸다
한시간 않되여 찾았는데 물먹은 곳 짜르고 교체한다
저녁전에 전부 회복되였다
부사장 李膺孝님
원호전화국장 李稱秀님은 부사장 이응효님 하고 서울대학교 동기이다
부사장님 이 이칭수 살려주면 내가 해달레는 요구 모다 해준다 말씀 하신다
모다 수리하고 나서
왜 몇천만 돈 들어서 양성한 전람전공을 체신부 인부로 빌려줬나
통신공사에서 전람전공 실무 적웅 훈련 않이하고
우편취급소 잡부로 용역 하게한 원흉(原兇)한데
교육 재료비로 들어간 1억원 교육재료비 변상식혀 달라했다
전람전공 모다 전화국에 배속 되었다
李稱秀국장 님 원효전화국옆에 있는 -불로장수 설농탕 집- 에서 밥을 먹자한다
누구,누구 두사람을 불로도 되냐 물어본다 그래라 했다
자가가 밥사는 모임을 만들 었는데
그 모임이 [칭수회(稱秀會)]인데 오늘이 처음 모임을 갖이는 날이 였단다
이칭수님은 체신부 근무하연서 外資事業만 취급하다 처음 전화국장을 하다보니
너무도 생소해서 자주 물어보는 동료들(師父님)이 있단다
일상의 신세에 報恩하려 모임을 만들고
[창수회(稱秀)]라 이름 부치고 처음날 인데 나도 끼워 밭았다
-불로장수집- 추억이 많은 집이다
원효로 체신공무원훈련소 에서 교육이 끝나고 송별회 하는집 인데
나한데 처음 개고기를 염소고기 라 먹여 식중독이 걸려 소동 부린집 이기도 하다
1965년경 체신공무원훈련소에서 국제통신사 시험관으로 구술시험을 하고
식사를 하려가는데 개고기집 에서 엄소고기를 한다며 멱으로 가자해서
먹였는데 중독이 나서 보건소에 실려가 치료밨고 했는데
서울체신청 공무과장 송창호님 공무계장 김완수님
본부 공무국 시외계장 강이근씨 등이 공모하고 거사를 했는데
이 사건을 1층의 교수부장 金椿澤님이 알고서
왜 먹거리로 혼을 내계 하느냐고 이맛살을 찌부려 섰다
지금 [稱秀會]는 [昌漢會]로 이름바귀여 李昌漢님이 두목을 한다
14/05-20 을지 昌漢모임
http://cafe.daum.net/kcla2012/AQjJ/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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