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홈피] 에서 갖오 왔습니다

보낸날짜 : 2002년 2월 17일 (日) 14:25 (한국시간)

보낸이 : 박영희 <younghee29@hanmir.com> 주소록추가 수신거부

받는이 :

수신확인 : 2002년 2월 18일 10:23:29

제목; 파키하 나라(Aotearoa) 발좌치 1/2

[3 億년전에서 1億년전 바다속]

대륙 이동학설 로는 3억년전 超大陸(판게아) 덩어리 에서 대서양 양쪽에 있는 남·북 아메리카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 으로 갈라지다 古生代 말에서 中生代초에 걸쳐 분열하기 시작하여 이동하면서

인도대륙 덩어리 에서는 세개 뭉치가 떠려저 나오는데

하나 는 호주 되고 하나는 남극 되고

하나는 바다속에 가라 앉아 있다

이것이 1억넌전에 바다속에서 화산이 폭발하여 바다물위로 올라와

섬이 되였는데 이것이 뉴질렌드의 땅 떵어리 입니다

해서 뉴질렌드의 땅떵으리는 火山질의 층 이랍니다

[대륙 이동설 : 1912년 베게너(Alfred Wegener:독일. 1880∼1930 )]

고생물 화석;

유사한 종의 화석이 남미,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남극 대륙 등에서 다 같이 발견됨

종유동

지질을 地質時代逆順年表 로 분석하면

호주 시드니 대즈마니아 鍾乳洞와 중국 桂州가 同期

[지 황]

남서태평양에 있는 섬나라 이고

호주 와는 남동쪽으로 폭이 약 2,000㎞ 다스마니아 해를 사이에 두고 있음니다.

북섬(北島;11만 4690㎢)과 남섬(南島;15만 460㎢)의 2개 섬으로 되어 있다 하나,

그 밖에 스튜어트섬·채텀제도 도 포함 됩니다

관할도서로

토켈라우제도·

쿡제도(1965년 자치정부 발족)·

니우에섬(1974년 자치정부 발족) 가 있습니다.

[면적] 26만 8680㎢.

[인구]395만 1000(2003).

[위 치]

남위 33~53˚, 동경 162~173˚ 범위내

1907년 영국의 자치령이 되고

1947년에 정식으로 독립 하여

영연방(코먼웰스)가맹국이며

[공용어]는 영어 수도는 웰링턴.

[국명],뉴질렌드 Newzealand

네덜란드의 한 지명을 따서 Nieuw Zeeland라고 한 데서 유래 한답니다.

마오리족(族)은 아오테아로아(#Aotearoa;희고 긴 구름이라는 뜻)

이 나라는

폴리네시아 문화권에 속하지만 19세기 중엽 이래 영국으로부터 많은 이민을 받아들인 결과

백인의 비율이 90%를 차지하여

오스트레일리아와 함께 남반구에 있어서 백인주도(白人主導)의 나라로서 생활수준이 높은 완전복지국가 가 되어 있습니다.

[國 旗]

영연방가맹국임을 나타내는 유니언잭 에다

남십자성을 나타내는 4개의 별을 배치한 것입니다.

뉴질랜드국가(國歌)는

God Save the queen>과

God Defend New Zealand>의 2종류가 있습니다.

[지형·지질〕

국토는 4만킬로 의

환태평양조산대[環太平洋造山帶, Circum-Pacific orogen]에 속하며

주섬인 북섬과 남섬이 남북으로 비수듬이 놓여져 (감마)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지형은 산이 많고 화산도 많으며 척량산맥(脊梁山脈 ) 은 특히 높고 험준 힘니다.

해발고도 200m 미만의 저지는 전체 섬 면적의 1/6에 지나지 않으며 평지가 적습니다.

개척이 진행된 200~300m의 구릉지 및 산록부( 山麓部)가 2/3를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는 1000m 이상의 고지 또는 산지이랍니다.

남북 양섬의 척량산맥은 제 3 기(紀)에서 제 4 기의 洪積世에 걸친 카이코우라(kaiaoura Peninsula) 의

造山運動 ( 2,500년전 경 때의 1년은 435일)으로 오늘날의 윤곽이 완성되었습니다.

북섬에는 척량산맥이 동부로 뻗어 있고

중앙부는 타우포 화산대라고 하는

용결응회암(溶結凝灰岩)의 화산대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주변의 높은 산과 온천관광지를 이루고 있습니다

바위 떵어리 라 농사지여 먹기 힘들고 .

바위돌 위에 나무나 풀을 쌓아 놓았다 썩어 20-50년 되면

草地만들고 풀 나오면 염소 나 소 먹어 고기 젖 산업으로 산다는 國土

[기후〕

편서풍대에 위치하므로 북단부(北端部)의 아열대지역과 고산지역을 제외하고는 거의 섬 전체가 서안해양성의 온화한 기후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연평균기온]

북섬의 오클랜드가 15.1℃,

남섬의 남단 인버카길이 9.8℃이며, 연교차도 대략 8~9℃로 한서(寒暑)의 차는 크지 않습니다.

[年 降水량]

대부분의 지역은 1000~1500㎜이나,

서던알프스의 서사면(西斜面)은 2000~6000㎜에 달합니다.

이 때문에 광범한 지역에 걸쳐 빙하가 형성 되었있씁니다 ,

[원주민 이주]

뉴질랜드의 원주민인 마오리인들은 폴리네시아 에 있는 여러 섬에서

AD 1200년 경에 이곳으로 건너왔습니다.

두 개의 선채를 가진 카누(waka)를 타고 별과 해류 와 새들의 날으는 방향을 안내 삼아

수천 킬로를 여행해 왔습니다.

대부분의 마오리인은 이러한 초기 폴리네시안 이민자들의 카누에서

그들의 계보(whakapapa)을 추적 한답니다.

그 중 하나는 쿠페(Kupe) 선장이 타고온 것이었는 데,

쿠페 의 아내는

길고 흰 구름의 땅이라는 뜻의아오테아로아”(Aotearoa#)라는 이름을 이 땅에 붙여 주었습니다[#1]

마오리 사회는 그 성격상 부족 사회입니다.

대부분의 마오리인들이 도시나 중소 도시에 살고 있지만,

많은 마오리인 들은 자기들의 부족(iwi)에 대한 강한 소속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마오리 언어(Te reo Maori)는 모든 그들 부족 간에 공통어이며

뉴질랜드의 공식언어이기도 합니다.

마오리인들은 또한 풍부한 신화와 전설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강한 예술전통과 다채로운 설화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다. [#2]

최초의 유럽인은

1642년에 이곳으로 탐험한 화란 탐험가 아벨 타스만(Abel Tasman) 입니다

그의 방문은 잠시였으나,

한 화란 지도 제작자가 나중에 이 나라를 네델란드의 한 지역 이름을 따서

“뉴우 지일랜드”(Nieuw Zeeland)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1769년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James Cook) 선장이 도착하여 보다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며,

그의 방문은 영국이 뉴질랜드를 식민지화 하는 데 초석이 되었습니다.

마오리인들은 이들을

파키하”(Pakeha)라고 불렀으며,

오늘날에도 유럽계 뉴질랜드 인들을 보통 “파키하”라고 부릅니다.

[초기 정착민]들은

낯선 환경을 맞이하여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가지고 온 몇 가지 안되는 물품 밖에 없었던 그들은 무엇이든 필요하면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초창기 개척자들의

결단성,

독립심,

창의력 등이

오늘날의 뉴질랜드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3]

일부 마오리인들과 파키하 들은 서로 교역하고, 함께 일하며, 협력 하였습니다. 그러나 식민지 개척자들이 점차 많아지는 반면,

질병과 토지몰수 및 전쟁 등으로 마오리 인구는 심각하게 감소 하였습니다. 유럽 정착민들은 문자와 기독교를 도입해, 마오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840년에 많은 마오리 추장들이

와이탕이 조약에 서명을 하였습니다.

이는 오늘날 뉴질랜드의 건국서류로 인정되는 영국 왕실(국가)과의 조약이 었습니다.

이 조약은

영국민들이 뉴질랜드에 정착해 통치를 하도록 허용했고,

반면 마오리인들은 그들의 땅과 자원을 장악하도록 허용 됬습니다.

그러나 마오리인들에게 땅과 자원에 대한 권리를 주겠다는 이 조약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고,

본국에서 이민이 보내어졌고.

영국식 사회경제제도를 유지하면서

자급적 농업경영의 실현을 목적으로 1가구당 16ha의 경영규모로 했으나

너무 적어서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대신 하여

대규모의 목양지(牧羊地)가 오지(奧地)로 뻗어나갔습니다.

북섬에서는 토지소유그리스도교 포교를 둘러싸고

1860년대에서 1870년대에

이주자와 마오리족 사이에 2차에 걸친 전쟁이 일어났슴니다

그 결과 수 많은 마오리인들의 땅이 몰수되었습니다.

1861년에 남섬에서 金이 발견되자

최초의 중국인 이민자들을 포함하여

뉴질랜드에 새로운 인구 유입 이 일었 났습니다. [#4]

여러 나라로부터 이민이 계속 늘어났고,

얼마 안되어 마오리인들은 비 마오리계에게 수적으로 열세가 되었습니다.

뉴질랜드 군인들은 1, 2차 세계 대전에 연합군으로 참전했습니다.

1914년 부터의

1차 대전 중 터키의 걸리폴리(Gallipoli) 전투에서 영국군의 지휘 하에 있었던 뉴질랜드와 호주 군인들이 엄청난 희생을 당했습니다.

참고로

1차 세계대전이 벌어졌던 1914년부터 1918년 사이,

뉴질랜드는 전체 인구 80만명 중5만여의 부상자(중1만7천 전사)를

내는 상처를 안았습니다.

이 수치는 그 당시 뉴질랜드 남자 성인 (20-40세)의

삼분의 일이 전사하거나 부상당했다는 것 입니다 . [#5]

뉴질랜드 현충일(ANZAC day)에는 이러한 모든 뉴질랜드 전몰장병들의 희생을 추모 하는날도 되여 있습니다.

뉴질랜드 역사의 큰 줄거리는 영국의 식민지 에서 독립적인 국가로

변천한 것이며. 이 과정에서 중요한 하나의 계기는

1972년 임니다

이 해에 영국이 유럽 경제 공동체(EEC)에 가입되자

뉴질랜드는 이 때부터 국제적인 교역 관계을 넓히게 되였습니다.

뉴질랜드는 국제 무대에서 강력한 목소리를 내게 되었고,

1989년에 세계 최초의 비핵국가로 선포해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영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과도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뉴질랜드에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태평양 군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이들의 인구는 가장 빨리 성장하고 있는 새로운 이민 그룹인 아시아계 인구와

같은 수준 입니다.

--- 이 이야기는 다음 장으로 이어 집니다 ----

"베토벤" 로망스 No.2 F 장조 작품번호 50 - "James Last"편곡
Posted by 박 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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