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공;최성규님

 

모나코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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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코 여인 그레이스 캘리
 

♧ Grace Kelly ♧
1929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난 그레이스 켈리는
당시 필라델피아에서 유명한 부잣집 딸이었다.
아버지는 건축회사 사장이었고, 어머니는 모델출신의 미인이었다.
 그런 그레이스는 유복한 생활과 뛰어난 가정교육으로
흠집한번 나지않은 훌륭한 여자였다.
그런 그레이스켈리를 눈여겨봤던
델버트 만(Delbert Martin Mann)은
그녀를 자신의 영화 14시간의 단역으로 발탁했다.
그녀의 나이 23세였다.
(늘 주연만 했던 여자인줄 알았던 그레이스 켈리도,
처음엔 조역 축에도 못끼는 단역으로 시작했다.)
 그런 그레이스는 다음에 출연한 영화 "하이 눈"에서
 게리 쿠퍼의 퀘이커 교도의 아내로 출연했고,
영화의 흥행에 따라 그녀는 당연톱스타가 되었다.
하이눈을 시작으로, 해마다 영화를 찍었던 그레이스 켈리는
1953년 "모감보"를 시작으로, "다이얼 M을 돌려라",
 "이창", "그린 파이어"
그리고 그녀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 주영상을 안겨준 "갈채"까지 흠잡을곳 없는 삶을 살았다.
당시 그레이스켈리에게 적극적인 데쉬?를 하진 못하고
 나름대로 흠모했던 히치콕 감독은
"그레이스 켈리는 눈덮인 화산과 같다.
그녀의 순백의 고결함은 다른배우에게서 찾아볼수 없는
팽팽한 긴장감이 있다" 라며 극찬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던중 그레이스 켈리는
 1954년 모나코를 방문, 그곳에서 레니에3세를 만나게 된다.
 당시 레니에 3세는 그레이스 켈리가 너무나도
절실하게 필요했다.
당시 프랑스와의 조약으로 인해
모나코의 레니에3세에게 후계자가 생기지 않을경우
모나코는 프랑스의 소도시로 병합되어야 했고,
 모나코의 관광 사업또한 주춤해 경제적으로
위태로웠던 상황이라 레니에 3세는
세계 최고의 흥행녀를 왕실의 일원으로 인정해서
왕비로 맞아야 했던 상황이었다.
그당시 레니에 3세의 결혼 물망에 올랐던 여배우들은
1. 그레이스켈리
2. 오드리 햅번
3. 마릴린 먼로
오드리 햅번과 마릴린 먼로는 오드리 햅번은
영국의 혈통상 에드워드 3세의 후손이었는데
당시 레니에 3세와도 친족관계가 형성되었고,
그것보단 오드리 햅번의 아버지가
나치 추종자여서 왕실의 반대가 있었다.
(오드리 햅번은 아버지의 죄를 용서받고자
평생 봉사활동을 했다고 하네요)
 
마릴린 먼로는....
일딴 유명한 여배우임에는 틀림없으나 문란한 성생활,
남자관계때문에 당연 반대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레이스 켈리는 그중 가장 훌륭한 여배우로
그녀의 부모또한 뺄곳없는 훌륭한 사람들이라
모나코 왕실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레니에3세의 친구라고 불리는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레니에 3세는
그레이스 켈리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시작합니다.
그레이스 켈리는 칸느 영화에제에서 레니에 3세가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한 제안을 승락했고,
그렇게 둘은 알게 모르게 인연을 유지해 나갔다고 합니다.
그렇게 서로를 알고 지내던 두 사람은
1955년 크리스마스를 부모와 함께 지내기위해
필라델피아의 부모님 집에 있던 그레이스 켈리를
직접 찾아간 레니에 3세의 적극적 구애와
 55년 그해의 마지막날에
레니에 3세가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했다.
 "그레이스, 나의 궁전은 나 홀로 지내기엔 너무 넓어요...
" 함께 넓은 궁전을 같이 쓰자는
뭔가.. 로맨틱한 청혼이었고
그것에 넘어간 그레이스켈리는 청혼을 받아드렸다고 합니다.
당시 켈리는 그녀의 인기의 절정을 찍는
"상류사회(1956)"를 찍고 있었는데,
그 상류 사회에서 레니에3세에게 청혼반지를 받은걸
그대로 끼고 나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1956년 그레이스 켈리는 4월의 신부가 되며
레니에3세의 영원한 신부가 됩니다.
 
 영화판에 뛰어든지 5년만에 단역에서
톱스타의 인생을 산지 딱 5년만에
그녀는 그렇게 헐리우드를 떠나게 됩니다.
 (아.. 여기서 그레이스 켈리의 부모님은 모나코에 결혼 지참금으로 US$2000000을 지급 해야 했는데..
US$2000000 이돈이면 지금 우리나라 20억인데..
당시 1950년대의 US$2000000 이면.... 어마어마한 돈.)
여하튼 당시 레니에3세와 켈리의 결혼식을 보기위해
 3천명 이상의 유명인들이
기차, 비행기, 선박, 요트를 이용해 모나코를 방문
당시 결혼식에 몰린 사람들이 쓰고간돈이
모나코 재정 운영의 20~50%를 육박하는 돈이었다고 합니다.
. 확실한 결혼 재태크의 성공이죠
모나코는 프랑스에게 합병당할 위기의 나라에서
미국의 최고 유명배우 그레이스 켈리가
왕비로 있는 품격있고 유명하고 아름다운 나라로
뒤바껴져있었고,
오나시스와 레니에3세의 예측대로
모나코는 다시 관광수입이 급증하고,
경제가 활발하게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모나코 사람들은 레니에3세와
켈리왕비 [원래는 왕비가 아니라 공비임]를
 가장 사랑한다고 합니다) - 옮긴글 -
     

     

     

     

     

     

     

     

    Posted by 박 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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