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伴侶)

 

|정우동호회

고완식 | 조회 29 |추천 0 |2015.08.19.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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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伴侶)

 

영국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의 아내는 처녀 적부터 병을 앓았다. 그녀는 15년을 수발해준 남편 품에 안겨 행복하게 숨을 거뒀다. 브라우닝이 아내에게 바친 201행 장시(長詩)가 'One word more(한마디만 더)'다. 거기 'Once, and only once, and for one only(한 번, 단 한 번 그리고 단 한 사람을 위해)'라는 대목이 두 번 나온다. 1951년 전란통 대구 교회에서 김종필 중위가 초등학교 교사 박영옥을 아내로 맞으며 읊은 사랑의 맹세다.

▶김종필은 6·25 직전 박정희 관사에서 국수를 먹다 처음 박영옥을 봤다. 박정희 조카딸은 수줍어하며 부엌만 맴돌았다. 6·25가 터지고 박정희 소령은 전선으로 떠나면서 박영옥에게 "무슨 일 생기면 김종필을 찾으라"고 했다. 김종필이 어느 날 전갈을 받고 가보니 박영옥이 요도 없이 홑이불만 덮은 채 고열에 신음하고 있었다. 말라리아였다. 박종규 일등중사에게 의사를 불러오게 해 약을 먹이고서야 열을 잡았다.

▶이듬해 1·4 후퇴 때 서울까지 밀린 김종필을 박영옥이 찾아왔다. 대구서 화물차 얻어 타고 왔다 했다. 김종필은 결혼을 결심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둘 다 고혼(孤魂) 되긴 싫었다. 결혼 후 김종필 대위는 동부 전선으로 갔다. 박영옥이 영하 20도 추위에 젖먹이 안고 폐허 춘천까지 왔다. "걱정이 돼서, 그 추운 데서 어찌 사나 싶어 왔다"고 했다. 김종필은 훗날 "집사람 그 열정 때문에 평생 꼼짝 못하고 살았다"며 웃었다.

 

▶김종필 전 총리 부인 박영옥 여사가 그제 세상을 떴다. 뇌졸중으로 몸 불편한 남편이 날마다 밤늦게 병상을 지킨 지 다섯 달 만이다. 남편은 아내가 가끔씩 사람을 못 알아볼 때마다 "데이트 신청합니다"라고 했다. 그러면 아내가 알아보고 웃곤 했다 한다. 남편은 결혼 금반지로 목걸이를 만들어 숨진 아내 목에 걸어줬다. 빈소에서 흐느꼈다. "이렇다 할 보답도 못했는데 나를 남겨놓고 세상을 뜨다니."

▶박 여사는 생전 인터뷰에서 "여필종부(女必從夫)를 되새기며 남편의 길을 따른다"고 했다. 남편을 평가해달라 하자 "하늘같이 여기기 때문에 점수 매긴다는 생각 자체를 할 수 없다"고 했다. 김 전 총리는 고향에 부부 묘를 마련하고 묘비명도 써뒀다. '내조의 덕을 베풀어준 영세(永世) 반려(伴侶)와 함께 이곳에 누웠노라.' 부부가 병실에 마주앉은 사진을 보니 닮았다. 64년을 함께하는 사이 조금씩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영원한 짝, 반려라는 말이 새롭다. 새삼 부부란 무엇인가 생각했다.

1999년 6월 28일 예지 부제크 폴란드 총리 환영만찬 중에 박영옥 여사가 김종필 국무총리의 뺨을 손수건으로 닦아주며 웃고 있다. 박 여사는 굴곡진 정치인생을 살아온 김 전 총리의 곁을 64년 간 지켜온 충실한 내조자였다.

 

 

(옮긴 글) 

 

 

 

 

Posted by 박 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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