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3월

결혼하고 나는 결혼비용을 절약해서 

 

철량리 기차역 뒤 동대문구 典農洞에

땅 28 평에 방세개 인 새로지운 한옥을 하나사고 이사를 했다

 

제대 하고

시작한  영화사, 전기공장,  잡지사의  옛 동료들이

그래도  옛날 못 갑파 진 내돈을  얼마 나마 갑파주는 셈이  였나보다 

 

그래도  신문에 공개모집 한다는  공무원 모집시험에 

합격하여  임시적 공무원 부터 시작하여    

그동안 나는 근무처가

원효로 공무원 훈련소 교관 으로 3년 근무하다 

옆집인 통신영구소 로 전보되여 

통신용품의 국산화사업으로 쇠깍고 열처리 하고

배우고 하여  전화기  송수화 갑의 국산화에  선공했다  

 

다음 맏은 과제가

P-4M 동축반송 하고  PCM-24 팔스반송의  국산화  연구인데 

전기통신용품 시방의 초안을 작성 하는것 으로 

영구 과제를 달성하고

코론버계획 으로 6개월 해외국으로   연수가는 선발시헙에  합격했다  

 

이와같이 책보며 일 하고 쇠부치 깍아 열 처리하는 일을 하다

다시 광화문 체신부 공무국 전송과 로 옴겨 젔다

몇 년이 지났다

하루는 대일차관 시외회선 확장공사를 하는 무인중계소 에서

온도 변화에 따르는  자동 이득조정 현상을 확인하려고  

몇일을  땅속과 전보때 에서 노숙을 하며  

지방출장을 갔다 뻐스가 없어 추력을 타고 돌아 오는데

청량리에서 시내 진입을 하지 말란다

 

그래서 청냥리 역근처 목용탕에서 몬지을 싣고 해산 하고

집으로 돌라왓는데

 

애들을 찾으니

큰애하고 둘째가 동내 애들하고 학교놀이를 한다면서

킅길를 몇 개 건녀고

복잡한 시장을 지나 3-4킬로 떠려진

소학교에 가서 동내에서 같이놀든 학교다니는 애들하고

노래도 부르고 글자도 배우며 놀다 온단다

 

얼골이 까망고 손은 그림그린 색 연필로 색동이가 되고

그래 놀랐다

 

종로의 누님한데 이야기를 했다 유치원 보네야 겠다고

몇일있다 누님동내 소학교에서 청강하는 학생으로 학교에 나오란다

큰애는 6세 나이다

 

그래 정규 학생보다 두살이 어리지만 청강생으로 입학을 했다

 

월요일이 되면

 보네주는 자동차로 누님집에 가서 학교 다니다

토요일에는 전농동 집으로 온다

 

한데 한살아래 5살되는 둘째도 같이 따라 다닌다

 


1968년 3월 18일이; 월요일 이다

누님집 에서 차가 와서 큰애는 충신동에서 내려놓았는데

둘째가 않내리고 나하고 같이 간단다

그래 광화문에서 나는 내리고 보낼려 했는데

광화문에 오니 내리지 않고 떼를쓴다

사무실까지 대리고 올라 왔다

한데 3층계단에 올라 서자

자석식 전화기의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뒤여가 잡으니

경남건설국장 최석환 선배님의 다급한 목소리 이다

부산시외국 불났어

여기구포 나반 인데

소장 김동환 바끌께요

오전 07;20 경이다

김동환 님 원효로 훈련소 교관요원 으로 3년을 같이 근무했다

그리고 시외회선 성능항상작업 조사요원 으로도 같이 일했고

장거리 시외회선 의 통제와 통계에 유능하다

물어보는 사항을 요령있게 알려온다

부산시에서 외부로연결된 720 여개가 않된단다

부산은 통신적으로 외부지역과 고립되여 있다 않된다

8층 5-6층 2층의 통신통료가 불에 타서 녹아 버렸다

각층 방안의 시설피해는 모른다

물을 뒤집어 쓴 것은 사실이다

복구 전망은

오래 걸린다

새로 개통한지 60일 미만이고 새로운 시설이고 숙련된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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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 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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