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5-01 (6) 서울ㅡ진해 회선 만든다(APACL)

  • 우리 역사 문화 |2012/05/01 14:33

6) 1954년06년15일(APACL) 서울ㅡ진해간 회선을 만든다

1953년여름 통심감실 기획과장에 중령 동 욱(董 旭)님,

통신과장에 중령 정 규석(鄭 圭石)님 으로 보직명령이 있었다

이 두분은 얼골이 잘 생졌다 키는 자그만한데 그리고 머리회전이 빠루고 공부하고 노력하시는 분들이다

두분 모다 후에 정부조직의 차관벼술 까지하셨다

반송회선을 한창 증설 하고 회선의 품질을 올리느라 전국을 누비고있는

어느 날 유선계장 이신 김춘택 소령님 하고 통신과장실로 가니

통신감인 준장 한 당욱 실에서 회의가 있다며그곳에 참가했다

내용인즉

경상남도 진해시에있는 해군통제부영내에

대통령 의 휴양소가 있는데

이곳에서 우리나라 대통령인 이 승만씨가 아세아반공지도자회의를 개최하는데

서울의 경무대와 진해별장간의 통신회선을 만들어야 하는데

체신부, 교통부, 육군이 각기 만들어서 그중 좋은겄을 사용한다니

우리 군에서는 육군이 이 회선구성을하는데

기획과장님이 회담지원의 책임을 맏았다 고 한다

우리 통신과에서는 내가 실무책임을 맏고

기획과장의 지휘하에 일을 하게되였다

그 당시 서울에는 육군본부 전방지휘소가

을지로 네거리에서 명동성당으로 드러가는 모서리인

중구 수하동 지금의 외환은행 본점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이곳 육군본부 전방지휘소로 지원되는 대구와의 전화회선은

지금의 노란진4동에있는 노랑진전화국 근처의 창고가 단말국이였다

이 창고는 높은곳에 있었는데 그 근처에는 육군의 부대

그리고 공군부대가 주돈하고 있었고

단말국 뒤는 약간높은 언덕이고 견고한 반공대피호 가 단말국 으로 쓰이고 이곳에 전주가 하나 있었는데 이전주에서 나선로는 끝이나고

케이불 선로로 어데론가 연결여 있었다

이 전주번호는 체신부 명칭으로 [502호주]이다

이전주 아래로는 전차길이 지나가고 있였고

그 너머로 서울-부산 철길이 보였다

한편 대구에서 서울주변에 있는 부대와 전화를 할려면

사정이 나빠

명동입구의 전방지휘소까지 와서 전화를 걸든가

않이면 전반지휘소의 교환병이

일단 말소리를 듯고 통역하듯이다시상대방에 말을 전해주어야 했고

일부 고위직에있는 지휘관은 미군으로 부터 말소리를 증폭하는 전화기인 TP-9을 얻어서

전화를 하고 있었으나 일반적으로 말이멀어 통화하기가 힘들었다

이와 같은 상황 이나마 대구에서는 마산의 반송 단말기를 진해의 해군통제부로 옵기여

대구ㅡ진해 회선 으로 만들고

서울ㅡ대구 회선을 대구에서 4선식으로 연결하여

서울ㅡ진해 간 회선으로 만들려 했는데

서울에 와서 사정을보니 서울시내는 문론 서울 근교에서

대구 육본하고는 말소리가 멀어통화를 할수가 없다

그러나 전방지휘소가 있는 명동에서 가까운곳에

서울(중앙)전화국이 있어 육본 전방지휘소에서 경무대간은 좋은 회선의 확보가 가능했다

이때 빠른기간에 서울-진해 간 전화의

말소리를 개선하는 방법은

노랑진에있는 반송 단말장치를 명동입구의 육본 전방지휘소로 갖어오거나

무선중계소를 관악산에 신설하고 서울까기 무선중계망을

사용 하는것인데 국가원수들이 사용하기에

당시의 무선중계망의 사용은 전화의 질하고 안정성 에서

나선로 보다 많이 떠려지는 상태 이다

대구에 도라와 보고하니 명동입구 육본 전방지휘소 까지

나선로를 인입 하는 방도을 쓰란다

당시 용산육군본부의 건물을 쓸려고 건물수리와

육본 구내 통신선로 보수 와 태능 육군사관학교 선로공사를 하고있는

71통신가설대대 3중대장에께 노란진중계소 [502호주]에서

중구 명동입구 육군본부 전방지휘소까지를

2,6미리銅被鋼線(2,6mm Cup-Steel)으로 인입 하라는 작전명령이 하달되였다

노랑진중계소 [502호주]에서 전차길을 건녀

도로 양옆에 있는 전차 도로레에 전기를 공급 하기위하여 세워놓은 철골전주 에다

미군용 8선 시외완목을 첨부 하고 2,6미리 銅被鋼線으로 나선로를 가설한다

선로의 경로는 [502호주]에서 전차길을 건녀

한강쪽 인도변 의 電車鐵骨電柱를 따라 약 천미터를 가고

사육신모 앞에서 서쪽으로 꺽겨 철길로 들어가서는

교통부 선로에 椀木을 달아 한강철교의 동쪽편에 철이나 목제로 만든 완목을 첨가 하여 한강을 도강한 후로는

용산역을거처 삼각지를 조금지나면

동쪽으로 갈현동의 하수도 개천을끼고 교통부선로 에서

전차길로 나온다

이곳 개천[약150미터]에는 목전주 몇대를 세우기로 했다

[미 공보원 정문 맞은편 남산 미군부대에서 흘려내려오는 하수개천]

이 하수개천에서 전차길로 나와 체신부 시내선로 전주에 완목을 부처 갈헌동,동자동, 서울역, 남대문을거처 소공동,서울우체국,

울지로입구 네거리에서 동쪽으로 꺽겨 수하동 명동입구인

육군본부 전방지휘소 까지 나선로를 끌고 오기로했다

이 거리는 전차철골 전주사용구간이 천오백미터

교통부선로 첨가 약 6키로 한강철교 첨가 천오백미터

갈현동 미 공보원앞에서 체신부선로 첨가 약 삼키로의 거리였다

노랑진 에서 전차전주에 완목을 달려하니

1950년 6,25사변이 나고 1953년까지

가로수의 가지치기를 않하여 나뭇가지 밑둥 직경이 5-10센티 이고

너무나 자라 전선을 가설 할수가 없다

그래 영등포 구청에가서 이야기를하니 가로수정리를 해줄테니

협조요청 문서를 달라고 말한다

당시는 구청에서 업자에께 돈을 주고 나무를 치는 겄이 않이고

가로수 나무가지가 목재로서 너무좋아 업자가 오히려 돈을 내고 나무가지를 짤라 가는데

이곳의 가로수는 특별한 사유없이

나무를 못 짜르게 되여있으니 군작전상 필요하다는 헙조문서를 달라고 이야기를 한다

대구 통신감실에 전화를하니 문서를 만들어

鄭正燮상사가 갖이고 내일새벽에 서울에 도착 하도록 해 주겠단다

내일 아침부터 가로수 나무가지 짜루기를 구청과 약속하고

교통부에 가서 교통부 전주사용과 철교 첨가 사용을 요청하니

전주사용은 가능하나 철교에 통신선첨가는 곤난 하다고 난색을 표한다

다음날 부터 나무가지를 치는데 이 사람들 톱하고 대나무 사다리만 갖이고는 나무가 너무 자라서 나무가지 치기의 일을 할수가없다

보고있든 중대장이 가설차와 중대의 미군 지,엠,씨 적제함에 발판을 만들어 주고는 보고있든 사병들도 투입하니 일이 빠루다

그련데 오후 두시가 좀 지났을까 마른 먹거리를 먹으며

작업을 하고있는데 저 멀리에서 백색 찦차에

이상한 복장의제복을 입고 카빙총을 세운체로 4명식탄 차가 불을키고 지나가고

그뒤로 검정 승용차가 가는데 몇대가 또 다라 붇는다

그중 찦차 한대가 우리옆으로 오더니 지금 대통령께서 가시다

나무를 짜루시는겄을 보고 내용을 알아 오라했으니

같이 가셔서 이야기를 해달란다

그려자 하고 옆에 대기하고 있던 3/4 톤차를 타고 갈려하니

자기차를 타고 가자기에 그차를 타니

뒤로 와서 내옆에 와 앉아서 수첩을꺼내여

내 이야기를 적으며 경무대로 갔다

옆의 넓은방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중대장 崔鐘宇 대위하고 정 상사도 따라왔다

사무실에 드러가니 점잖게 생겼고 품위 가있는 사람이

자리를 권하면서 나무가지를 처야할 사유를 소명 하란다

[1]반공지도자회의용 서울ㅡ진해간 통신선를 만두는 데

선로에 나무가지가 닿아 가지치기를 하고있다

작전명령서는 이겄이다 (영등포구청 협조용 공문)

[2]이 나무가지는 보통구청에서 일년에 두변 정도 짤라 주어야하나

사변 으로 인하여 몇년을 가지치기를 못하여 너무 무성하다

[3] 나무가지는 전기나 전화줄로 부터 1미터에서 2미터 정도 떠려 저야하는데

떠러지는 거리는 사용하는 선로의 전앞에 따라 떠려저야할거리가 다르고 法律로 정하여저 있다

서울에 민간인이 수복되고 전차가 개통 되였다면 이 나무가지는

전차 선아래에 있어야 하므로

3미터에서 5미터정도 가로수의 나무 가지를 처야한다

[4] 그리고

서룰ㅡ진해 구간의 통신선 헌황도 도면으로 그려서 주었다

그리고 무선통신망도 있지만

50 킬로마다 중계소가 있는데 중계소 에서는 발전기가 있고

2시간 마다 발전기를 교체해야 하므로 국가원수가 사용하기에는

부적절 하여 유선을 확보하고 있다

점 잖는 사람이 우리군인들 식사 대접 하라 옆의 사람게 이야기 하고는 자리에서 이려선다

옆의 사람이 같이 가자기에 옆건물에 가니

식당 인데 이상한 옷을 입은 젊은이 들이 먹고 있다

밥을 얻어먹고 있는데 점잔이 생긴 사람이 와서

각하가 나무보려 일부로 여의도 비행장 길를 그쪽으로 다니시니

너무 흥하게 짜루지말고

자주,자주 가지치기를 보기좋게하는 방향으로 연구해 달라며

참모총장 하고 통신감 한데 전화를 걸어

우리가 열심이 군무하고 있다고 말 하겠단다

그러면서 무었인가 힘든일이 있으면 말 하라며 명함과 연락처를준다

그래서 옆의 이상한옷 입은 나와 같이 차타고 온사람을

철도국 까지 같이 가게해 달라니 그려하라며 군인들 도와주라고 말은한다

경무대를 나오니 시간이 많이 지체되였다

소대장 하고 정 상사가 경무대 분 하고 철도국으로 간단다

저녁에 중대본부로 돌아온 정 상사 하고 소대장이 문제되는 겄을 모다 처리 했단다

[1] 교통부에 가서는

철교구간에 완목을 첨가하여 나선로를 3회선 구성해달라

[2] 교통부 전주의 두번째 위치에 완목을 달고 3회선을 구성해달라

[3] 서울시내 전주구간은 3회선을 체신부가 확보해 달라

[4] [502호주]에서 한강철교 남단까지 전차선 철탑에 가설하는 1,5 키로는71통신대대가 책임진다

선로 공법은 철도청/ 체신부/ 미군등 소관부서의 공법에 따른다

위 교통부 /체신부 선로구간의 첨가공사는

시설소관 부서의규격자재와공법으로 시공하는것이 원칙이나

시공기간이 급박한 지금

나 선로 보유기관에서의 시공이 불가할때에는

육군 가설부대에서 공사후 이 시설의 자산을 이관하고

사용료를 청산 한다

교통부와 체신부에 육군본부 작전명령과 협조문 그리고 경무대 직원하고

차래,차래 찾아가이야기를 하니

다 먹어 들어 가드란다

대구통신감실에 가서 문서를 만들어다 주면

육군본부 통신감실 유선계의 宋海準대위가

교통부나 체신부에 공사비대금인 돈을 물어 줄겄이니 그렇게하자며

그렇게 좋아들 한다

중대장 최 대위는 내일은 영등포 구청 엘가서

노란진 방면의 가로수 가지치기를 자주 해달라고

대통령의 지시를 전하고 구청의 실행하겠다는 문서를 밭아

경무대에 전하고는

태능 육군사관학교 통신공사 현장을 확인 하기로했다

정 상사는 야간열차로 대구로 내려갔다

문서를 갖이고 다시 서울에와서 관계기관에 문서를주고

태능 육사로 점심시간이 지나서 찾아왔다

통신감실에서는 야단이 낫단다 박 대위가 서울에서 나무 짜루다

이 승만대통령 님 한데 잡혀갔고

육본총장실에서 통신감실로 전화도 오고 등등

이상 하게 소문이 돈단다 마침 정 상사가 우리 통신과장님 한데

경무대에 간것은 사실이고 이러,이러 처리되 오히로 잘 된일이고

이 문서를 빨이 갖어가야 되며

박 대위하고 3중대장은

지금하고있는 노랑진 루-드가 잘 않되면 안동-장호원-이천 방면으로 돌려 동대문 방명으로 서울시내에 접근해 보자며

혹시나 하고 제2의 방안으로 그방면으로 선로순회를 하고 있다고 보고를 했단다

여하튼 유명해 젓단다 특히나

유선계장 님은 기분이 좋아

통신감실 생긴이래 대통령 각하하고 접해보기는 유선계가 처음이 라며

우리가 저지론 이야기를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그렇게 좋아 어쩔줄을 몰라 하신 단다

서우ㅡ대구간 씨스템중 하나를 전방지휘소로 단말장치를 운반하여 놓았다 말이 잘 들린다

춘천도 인천도 잘 들린다 서울에 있는동안 진해까지 시험해보고 십다

그런데 대구로 도라오란다 중대장 최 대위한데 인사하고

정 상사하고 뻐스로 도라 가기로 했다

체신부 시외 선로가 부산- 평양-신의주 국도 를 따라 건설되여 있고

도로변 가로수는 대부분 영등포 같은 뽀프라 이기때문이다

대전역 근처에서 시외뻐스를 내려서 시내를 걸어서

호남-경부로 분기되는 삼거리에 있는육군통신중계소에 들렷다

여기서 대구에 보고를하고

대전 유성나반중계소와 유성국제 중계소를 보고 나오는데

함경도 사투리에 일본발음의 독특한 말소리가 들린다

혹시나 해서 창우지 문 밖에서 물어봤다

朱寶淳선생 이시다

같이 온사람은 체신학교교장인 이 송우(李 松雨)씨 이고

인사를 하고 그간 안부를 묻고 내가 출장온 이야기를 하며

여러가지 질문을 하신다

장교이고 대위도 소총을 메고 다니느냐우리 행상이 이상한가 보다

선로 보며 다닐라 치면 지리산에도 가고

전투경찰이 高樓에서 手旗신호 하는 곳에도 가야 하무로

이 정도의 것은 준비한다 말씀드렸다

측정기가 없어

순전이 이론적으로 검토 하고

그렇다 보니 대부분이 표준이여야 하고

최종적으로는 눈으로 확인하는 형태로 일을 하는데

지금은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이라 말하니

나를 만난겄이 좋은가보다

주 선생님하고 교장선생은 찦차타고 북쪽으로 향하고

우리는 가설소대의 3/4톤차를 타고 남쪽으로 향했다

그당시 선로순회는 하늘이 잘보이고 강가나 산길도 잘갈수 있고

많은 사람이 탈수있고 타고 내리기 쉬운 대포 끄는 3/4톤차를 많이 이용했다

대구에 오니 대구ㅡ마산, 대구ㅡ진해회선이 않된다고 야단이다

대구 단말에 나가 절연저항과 용량을 재보니 많은 전화기를 선로에 매달고

수시로 선로를 감시하고

선로를 순시하는 통신병은 시험주마다 올라가 중대나 소대본부에 이상 유무를보고 하고있다

그리고 소대마다 시험실로 Sx4 케이불로 끌고 들어가

마치 대구ㅡ강릉 회선이 않 되든 때의 재판(再版)이다

그래 웃사람한데 보고하고 대책을 세웠다

[1]고장나면 수배한다

[2]고장나면 절체할 예비선로를 잘 감시하고 있돼

[3]연락이 없는한 반송점가회선으로는 나오지마라

[4] 고장책임은 불문 할겄이니 선로에서 둘어가라

[5]선로의 감시는 절체용 예비회선만 해라

그렇게하고 아침이되니 잘된다

경무대와 진해별관간 회선구성은 육군이 먼저하고 상태도 좋았다

진해 반공회담통신지원 총책이신 기획과장 동 욱 중령님이

진해에 갓다왔다

그리고는 나를 부른다

참으로 수고 했다고 삐죽이 웃으 시며 말한다

[참고]

한국자유총연맹 연혁

1949년08월08일

이승만 대통령과 장개석 총통이 경남 진해 정상회담에서 반공산주의

테평양 동맹 결성을 필리핀 퀴리노 대통령에게 제의 하기로 하고

1953년 11월

대만에서 이승만-장개석 정상회담을 갖고 이런 취지에 합의를 보았습니다

1954년06월15일

진해에서 제 1차 아세아 반공연맹총회 개최

아시아민족반공연맹(APACL) 창립

봄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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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 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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