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이영만(李榮滿)소위한데 신세지다

19522월경에 통신부장이 오민용(吳敏傭)소령으로 교체되였다 전임부장인 방회길소령과 신임부장인 오민용소령의 이취임과 송별연,환영회가 사단통신장교와 연대통신대장이 모여함께 이르어젔다

이모임이 끝난후 방희길소령이 나를불려 가보니 신임통신부장이 옆에있는데 나를보자 오민용 신임부장이 이려서서 내옆으로 다가오며 웃는얼골로

이사람이 유명한 박소위 인가하며 내손을 잡으며 한편으로는

내 군화대신 신은 사병용전투화 와 계급장없는 군복을 보더니

-갑종문관-이네 하며 웃는다

옆에있든 방희길소령이 거들어준다

발이 무좀으로 상해서 군화를 못신을 정도가되여 자기가 허가한 겄이고 여기 위관장교들은 옷에 계급장을 않부치며 계급장은 철모에나 부처있으니 너무 웃지말라며 변명을 해 준다

그리고 박소위 하고 일하다보면 당신도 박소위가 좋아질 것이지만

내가 힘들고 구준일을 가리지않고 무었이나 시키고 위혐한곳에도 수없이보넸지만 근소리없이 모다 해결해주었다

그련데 무었하나 보답 못해주고 갑자기 떠나니 오소령 귀관이 내목까지 보살펴 달라 부탁을 하며 소개를 해준다

그많은 장교중에서 나혼자 불려서 말이다

그리고 박소위 귀관은 나한데 매 맞지않은 유일한 장교 이지요 하며

오민용 소령에께 동이를 얻는다

그렿다 나만이 그렸다

 

방희길 소령은 떠났다

그리고 육군본부에 가서는 매일같이 내 친찬을 했다

이때 육군본부 기획과장이 중령 배덕진씨 인데 8사당과같이 무전기 609로 밭았으나 운용에 문제점이 있다며 힘들어하는 사단이 있는데

우리 8사단은 그련데로 말성없이 사용하니 마침 부임신고 하려 육군본부에 간 방희길소령 한데 물어보니

8사단의 박영희소위 불려올러 물어봐라 그 친구한데 너무 고생시켜 빗이 많으니 후가도즐겸 후방구경도 좀 식혀주라는 부탁에 따라

대구 육군본부로 출장오게 되였단다


대구 육군통신감실은 2층건물인데 2층에 통신감방이 있고

옆방이 기획과인데 기획과 문에들어서니 우리 동기생인 이영만(李榮滿)소위가 있다 

나를 발견하고 쫏차와 반긴다

그리고 배덕진 (裵德鎭)과장과 담당장교인 대위에게 소개 식힌다

[배덕진 중령은 후에 체신부장관을 지내셨다]

이영만소위 도 전방에서 육군본부 통신감실로 전출된지가 몇일이 않된다고 말한다

그려면서 내가 출장오게된 동기와 내용을 이야기 하며 우리동기생 들이 일선사단에서 전원 선임장교님들 로 부더 신임을받고있고 특히나 박소위와 같이 유명한 일로 육군본부에 알려지고 이곳에 오게되여 우리통신 10기의 영광이라며 그렿케 좋아 한다

그리고 우리가 소위로 임관하고 전방부대로 보직할때의 약속인 전방전투부대근무 일년은 꼭 지켜질겄이라며 여려 이야기를 서로했다

그리고 내 옷꼴을 보드니 내 호주머니에 돈은없을 겄이고 출장비는 내일 밭게되니

오늘은 자기집에가서 자자며 조퇴를 하고 나가자고 말한다 그때 나는 칼빙총을 갖이고 철모에 색바랜 미군 작업모에 반찬고를 하나부친 소위계급에

군복 웃도리는 

솜을넣고 이빈 사병용 동복을 입고 군화도 각반이 달린 사병용전투화를 신고있어 몰골이 말이 않이였다 보기에 안된겄 같았으리라

요령없고 순신한 일선의 초급장교의 모양새였다

왜냐 하니 기차타고 대구 올때 까지

내 모양새는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고 나와 같은 복장의 소위도 하나,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려나 대낮에 육군본부에 얼골이 타서 깜하고 머리칼이 자라 귀를덥고 옷에서나 몸에서는 냄새가나고 계급장이나 병과 뻿찌도 제대로 부치지않고

참호 에서나온 사람같은 몰골로 육군본본에 나타나는 사람은

-38선 넘어온 피난민 출신만이 였을겄이다-

 

그련데 이영만소위는 얼마나 고생했냐고 나를 위로한다 그리고 나서 오늘은 자기집에 가서 자고 내일아침에 회의에참석 하자며

나를 대리고 이영만씨 자기집으로 왔다

넓은 마당에

마당가 나무아래 우물이 있고 장독대가 있고 장독대 옆에는 살구나무가 있는데 살구꽃이 활짝피여있었다

마당에서 가운데 마루로 올라가 오른쪽이 안방인데 이영만씨가 드려가드니 문을 열고 나보고 드려오란다

안방으로 드려갔다 옛날 은장식을 부친 장롱이 있고

그앞에 어머님이 앉아 웃는 얼골로 손짓을 한다

어서온 하며


그옆에 형수님이 그리고 그 또옆이 이영만 소위의 형님이 이러서 있다

나는 어머님앞으로 가서 무릅을 하고 큰절을 드렷다

내 오마니 같이 몸이 작다

어서온 하며 내가 머리를 올리기전에

무릅으로 내옆에 와서 내 어께를 안나주신다 

포근하고 내움이 내 오마니 내움이다 포근한

오마니품이 안겨 울었다 소리 내여 

오마니를 나도 오마니를 안앗다

헝님부부도 내옆에서 눈물을 훌린다 이영만소위가 수건을 갖어와서 오마니 얼골을딱아주고 나를 준다

정신을 차렸다 오마니가 보고 싶엇는데

내 오마니 내움이 나서 제가 너무 했습니다


이영만소위 집에는 어머님이 계셨고 

그집은 형님부부의 집인데 형님은 고등학교 교장이다


대문옆 이영만소위 방으로 왔다

38선 넘어온 나를 불상이 생각해서인지 나를 반겨주었다 

강원도에서 츄력 짐칸에 하루를 타고 원주로나와 기차 화물칸에타고 와서인지 

옷이 말이 않이고 이발도 목욕도 못했으니 몹시 냄새가 났을 겄이다

이영만 씨  집에서 주는옷으로 갈아입으니 내가 입고온 옷은 내일 아침까지 

옷과 내복을 세탁하여 주겠다며 갖이고 나갔다

그리고 나를 밖으로 대리고나가 이발과 목욕을 시켜준다 몸 단장을 어느정도하고

저녁에 집으로오니 이영만씨가족이 기다리고 있다

살구나무 우물까 마당에 대나무로짠 교자를 놓고 저녁상을 차린다


내가 평안도사람이라고 

경상도에서는 생소한 불고기랑 구이랑 불고기 잔치를 해주신다

마당에는 숫향에 불을 놓아 모기나 벌래의 구충을 하며 

대구 약전골목의 풍경을 돗아 준다 

식사를 같이하고 

새로 깔아준 이불자리에 이영만소위하고 같은방에서 누어서

여려 이야기를 한후 잠을잤다


다음날 일어나니 세탁한옷에 새로장만한 야전잠바에 

목이긴 워카군화가 준비되여 있다

조반을먹고 육군본부 통신감실에 가서 회의를하고 점심때 회의를마첬다

회의에 참가한사람은 

배 덕진중령 주관하에 미군소령과 각사단에서온 대위들이 많은데 소위는 나 혼자이다

회의가 끝날무럽에 609 무전기의 조정실기를 한다 20 개소가 넘는 조정개소를 한3분도 않걸려 609 무전기를 조정하니 좀 믿어지지 않는 모양들이다


그래서 두개 사단의 정비병을 2 ,3명식 우리사단에 보네주면

단시일내에 조정은 문론 고장수리까지 할수있게 가루처 주겄다고 제안하고

이겄이 채택되여 회의는빨리 끝날수가 있었다

그련데 회의중 내가 기계를 조정하는 겄을본

미군소령이 나를보며 엄지손가락을 세워 

남버 원 이라하니 회의 참석자가 모다 나를 믿는다

회의가 끝나고 딴사람들은 대위이니까 타고온 차가있어 타고온 찦차로 돌아가는데 

나는 차도없고 대구시내의 길도몰라 이영만소위 한데 인사하고

부산의 누님집으로갈려고 대구역으로 갈려한다니

이영만 소위가 

통신감실 식당부식운반용 3/4톤차를얻어 

대구역까지 대려다준다 이때만 하여도 기차시간표가 있는겄이 않이고 

무순 차건 방향이 같으면 타고갈 때까지 가는겄이였다

나는 이와같이 이영만소위 한데 신세를젓다


그려나 그후 이 신세를 갑지못하고 계속신세를 지고나 무언중에 도움을 받어왔다

이영만씨는 사변전에는 대구에서

중학교 교편을 잡았고 인격을 갖은분이고

많은사람으로부더 존경를받는다

내가 1952년 살구꽃이 피는초봄에 밭은  형님 가족의 사랑을

나는감사하고있다 

감사했읍니다  

Posted by 박 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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