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렌드공화국
작성자 : younghee29 작성일 : 2003.10.01 17:09조회 : 216

제목; 아이렌드 공화국

우리보다 몇배 기구한 운명에서 죽다 남은 민족의 先進한 거래의 歷史입니다

아일랜드 공화국 이야기 입니다

1,국제 경기를 보다 보니 나라 깃빨이 비슷한 것이 있었습니다

어떻 나라 깃빨은 구별하기 힘이 들었 습니다

외국 사람들은 우리 나라 와 일본 깃빨이 거진 같다 고도 합니다

그련데

코스타리카 의 깃빨이 북쪽 하고 모양새가 그렿고 한데

제가 알기로 여행하다 보면

이태리;(<>,白,赤) 하고

부란서;(<>,白,赤)

의 나라가 국경을 맞대고 거진 같은데 (<> 의 綠 과 靑)

국경선의 이태리 巡査는 모자가 축 느려진 것을 쓰고 있고,

부란서 巡査는빳빳이선 모자를 쓰고 있는데

이태리 하고

아일렌드 깃빨;(綠,白,<오렌지>)은 깃대 반대쪽이

<붉은색>하고<오렌지>색이 다를 뿐이니 누가 분간 하기가 쉽 습니까

야! 이거 이상 한데 무순 상관 관계가 있나 ---- 없습니다

(아이렌드 깃빨은 폭1;길이 2)

2, 아일랜드 는 BC 6,000 년경 中石器時代에 영국으로부터

건너온狩獵人들이 정착자 였으나

BC 6세기경 부터 중부 유럽에서 이주해 오기 시작한

라틴 문명의

<켈트>族이 초기정착者 들을 제압하고

<애란>人種을 형성 하였습니다.

[기독교]

5세기 경 아일랜드에 전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6.7세기경

수도원 중심의 찬란한 아일랜드 문화를 꽃 피우는데 기여 하였고

아일랜드 수도사들은 9세기 이전까지 구라파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기독교를 전파하였습니다.

12세기 중엽부터 英國의 침략이 시작되어

1653년 영국이 아일랜드 전체를 식민지화 하게 되었지만

1919-1921년 영- 아일랜드 간 전쟁을 거쳐 휴전조약이 체결되고,

그 결과 영국으로부터

영 연방 자치령 의지위를인정 밭아

1922년 명색적 으로 독립은 하였습니다.

그려던 것이

아일랜드는 1937년 신헌법을 제정하여

國號를 Eire(영어로는 Ireland)로 호칭하고

英 聯邦自治領의 지위에서 벗어났으며,

아이렌드는 2차 대전에서도 중립을 표방하고

1948년에는 英聯邦 에서 탈퇴, 共和國이 되었습니다.

일단

영연방에 가입 했다가 탈퇴 중인 국가는 아일랜드 1개국뿐 입니다

3, 섬나라 뉴질랜드와 아일랜드는 인구규모, 자연환경

산업 여건도 비슷하다고합니다.

국가 경쟁력 10위권 안의 여타 국가들과 비교해서도 경쟁력

면에서뒤지질않다고합니댜 .

지금 사는 우리 옆집이 아리렌드 사람 집 입니다

이분 300 여평 대지에 건평 120 여 평의 2층 집을 짇는데

대목수는 사고

여타 작업 에는 자기가 종사하며 일년 여에 준공하고

지금은 앞 마당의 정원 가꾸기(잔디 심고, 나무심고, 모양좋은 자연석 놓고)와

뒷마당의 풀장 건설 를 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중장비를 동원하지만 자기들 가족 힘으로 합니다

우리가 보는 영화의 開拓史 그대로 억척 스렵고 근면 합니다

그련데 가족 이라야 무역화사를 운용하는 부인 하고

8-10 살 정도의 두아들 뿐인데

이 분이 우리 딸들 에께 이야기 한답니다

자기 族屬의 근면성과 先祖의 悲慘하든 유량생활의 사진을 보이며

아이레 인종의생활관 이랄까 인생관 이랄까를 요

4,제 생각도 그려 합니다

# 배고픔의 고통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진정한 인생이 무엇인지

말 할수없지요.

인생의 희극과 비극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고통과 비애를 딛고 일어나

희열의 순간을 맛본 사람들 임니다

우리세대 에는

멀리는 日帝時代부터, 태평양전쟁, 광복과 남북분단,

6.25등 役事의 대 소용돌이 속에서

力士로서 主演을 담당했든 분들이

지금은

이빨은 빠지고 눈은 멀었으나

아직 나라사랑의 정신은 건재 합니다

그리고 그 세대는 많은 創造와 役事를 했다며 氣焰을 토합니다

그련데

우리보다 더 비참한 역사를 갖인 민족 이 있습니다

압박과 설움, 빈곤과 굶주림의 역사는

-아일랜드-를 빼놓고 이야기 할 수는 없습니다

5, 아이렌드 의 빈공과 피박을 봅시다

그 하나는

800년에 걸친 기나긴 영국의 압제와 탄압,

거기에 대한 반항과 투쟁,

그럴수록 더 포악해지는 지배세력…이 였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1845년에서 1851년에

이르는 아일랜드의 <감자흉작>은 大饑饉 을 갖어 왔고

그들은 살길을 찾아 신대륙으로의 대이동을 감행 했습니다 .

1840 년 당시 800만 인구가 10년여후에는 600 만으로 1/4 이 줄었 답니다

100 만여 가 歐洲의 각지역으로 머슴등 하류계층으로 팔려 나가고 나

또는 배를 타고 신천지로 渡航하며 살길을 찾아 헤매 였습니다

그리고 슬프게도 100 만 여구는 땅속으로 돌아가고 했답니다

지금은 뉴질랜드의 북섬 보다 훨씬 작은 섬나라가 뉴질랜드와 비슷한

인구(350만)를 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외 인구는 본국 인구의 20 배를 초월하고 있으니

얼마나 해외 이주를 많이 했는가를 짐작 케 합니다

호주 에는

1788년부터 이주를 하여 30%의 인구를 표용하고 있고

뉴질렌드 에도 15%의 인구를 갖이며

미국 대륙에는 4,000 만의 인구를 갖이고 있답니다

본국에서의 고생을 생각하면 신대륙에서 무엇인들 못 했겠 습니까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

케네디,

포드,

레이건,

클린턴 등이

아일랜드 출신의 조상을 갖이고 있답니다

미국을 지배해온 계급은 WASP( White Anglo Saxson Protestant ) 즉

신교를 믿는 앵글로-색슨계 백인들이 었습니다.

그들의 벽을 뚫고 소수민족 출신으로 서 우뚝선 그들의 氣槪를 엿볼수

있습니다

6, 해외 이주 아일랜드인들이 현지에서 착실한 기반을 닦아가고

있는중에도본국의여건은 나아질게 없었습니다.

끈질긴 투쟁 끝에

1921년 영국 으로부터 자치권을 부여 받고

1949년에는 드디어 완전 독립을 쟁취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일랜드 공화국-을 출범 시켰지만

그 때문에 가난은 더욱 가속화 되는듯 했습니다.

이때

철저한 가톨릭 보수주의 국가인- 아일랜드-에서

女性대통령이

탄생한 것은 정말 뜻 밖이 었습니다.

1990년의 일이 었습니다.

<메리 로빈스> 대통령은

과감하고 혁신적인 정책을 추진해서 역사를 바꿔 놓았 았습니다

특히 과감한 개방정책으로 해외기업을 적극 유치하여

신화적인 경제발전을이룩했습니다.

-아이렌드- 정부의 홍보 통계 속에 있습니다( 대사관 홍보물)

1992-2000 기간의 총생산이 80% 성장 했답니다

그련데

이것이 주요하지요

근로자의 <노동조합>도 있고

고용주의 <고용조합>도 있고

다틈을 가리는 <노동 재판소>도 있고

하여

장사하기 좋은 황경이니 여로나라 기업이 투자를 했습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여러 기업이 투자를 했고

그곳에서는

國賓이상 가는 대접을 받았습니다.

7,스위스 국제경영 개발원(IMD)이 발표한 2001년 국가 경쟁력

순위를보면 -아일랜드-가 7위로 마크 되어 있습니다

정책의 향방과 그 추진력에 따라서 얼마 든지 선진화 할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는나라 입니다

한편 우리나라의 이민 역사는 조선조 말기 부터 시작해 일제치하를 벗어나

삶 길을 찾아

가기쉬은 陸路로서의 유랑지로

러시아, 연해주 로, 중국 간도 로

이민 길을 택했던 선조들(선구자)를떠올리게 됩니다.

그들 일명 조선족 2, 3 세를 거치는 동안 그들은

혹독한 추위와 싸우면서 삶을 개척 했지만

우크라이나, 카자 호스크탄 에서는

기회의 땅을 마련하지는 못했습니다

여기 남방구의 온화하고 적절하게 비가오는 곳에 와 보면서

그때 그분들이 南方進出을 했더라면

우리나라 는 보다 더 발전 했을 련지도 모릅니다

선 구 자

1,일송정 푸른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랑강은 천년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곳에 거친꿈이 깊었나

2 용두레 우물가에 밤새소리 들릴때

뜻깊은 용문교에 달빛 고이 비친다

이역하늘 바라보며 활을 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곳에 거친꿈이 깊었나

3 용주사 저녁종이 비암산에 울릴때

사나이 굳은 마음 길이 새겨 두었네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 우리 한 맺친 무리들은 三節을 좋아 합니다

긴 글 봐 주셔서 感謝 합니다

내용 중에서 크게 잘 못이 있으면

琢磨 해 주십시오

이 자료는

주한 아이렌드 대사관,

주일 아일렌드 대사관, 주 아일렌드 한국대사관 홈,페이지 에서 얻었습니다

Posted by 박 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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